법의기원:갈등,비판적관점 - ktug, ktsktug.org/~nomos/sol/connecting5.pd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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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기원: 갈등, 비판적 관점 Robert L. Kidder 번역 : 김도현 차례 1 권력, 계급지배, 그리고 법: 역사적 사례 2 1.1 밀렵꾼과 블랙법 ........................... 2 1.2 범죄, 노동, 부랑자법 ......................... 4 2 합의에 대한 거부 5 2.1 법은 갈등과 불평등을 조장한다 ................... 6 2.2 왜 적나라한 폭력이 아닌가 ...................... 6 3 엘리트간의 갈등 : 지배계급은 존재하는가 ? 10 3.1 영국과 유럽의 마녀 사업 ....................... 10 3.2 국가는 또하나의 계급 ......................... 11 4 갈등, 개혁, 그리고 지배 12 4.1 아동노동보호법 : 독점의 창출 .................... 13 4.2 경찰 개혁: 중앙 통제의 수립 ..................... 14 4.3 미국 인디언의 “보호” : 은폐된 착취 ................. 16 4.4 저개발국 원조: 중심부 통제의 확보 ................. 17 5 예측의 비교 19 5.1 인도의 영국 식민지법 ......................... 19 5.2 일본적 “조화” 와 엘리트 지배 .................... 20 5.3 소비에트법에 대한 무슬림의 반응 .................. 21 5.4 분업에 따른 갈등 ........................... 21 5.5 이스라엘 자치체들의 법 ....................... 22 6 결론 23 7 법의 기원: 생각해 보기 2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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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법의기원:갈등,비판적관점 - KTUG, KTSktug.org/~nomos/sol/connecting5.pdf · 그사안을“떼어놓는”방식의하나로법을이해하는보하난의관점(제2장과제3장을

법의 기원: 갈등, 비판적 관점

Robert L. Kidder 번역: 김도현

차 례

1 권력, 계급지배, 그리고 법: 역사적 사례 21.1 밀렵꾼과 블랙법 . . . . . . . . . . . . . . . . . . . . . . . . . . . 21.2 범죄, 노동, 부랑자법 . . . . . . . . . . . . . . . . . . . . . . . . . 4

2 합의에 대한 거부 52.1 법은 갈등과 불평등을 조장한다 . . . . . . . . . . . . . . . . . . . 62.2 왜 적나라한 폭력이 아닌가 . . . . . . . . . . . . . . . . . . . . . . 6

3 엘리트간의 갈등: 지배계급은 존재하는가? 103.1 영국과 유럽의 마녀 사업 . . . . . . . . . . . . . . . . . . . . . . . 103.2 국가는 또하나의 계급 . . . . . . . . . . . . . . . . . . . . . . . . . 11

4 갈등, 개혁, 그리고 지배 124.1 아동노동보호법: 독점의 창출 . . . . . . . . . . . . . . . . . . . . 134.2 경찰 개혁: 중앙 통제의 수립 . . . . . . . . . . . . . . . . . . . . . 144.3 미국 인디언의 “보호” : 은폐된 착취 . . . . . . . . . . . . . . . . . 164.4 저개발국 원조: 중심부 통제의 확보 . . . . . . . . . . . . . . . . . 17

5 예측의 비교 195.1 인도의 영국 식민지법 . . . . . . . . . . . . . . . . . . . . . . . . . 195.2 일본적 “조화”와 엘리트 지배 . . . . . . . . . . . . . . . . . . . . 205.3 소비에트법에 대한 무슬림의 반응 . . . . . . . . . . . . . . . . . . 215.4 분업에 따른 갈등 . . . . . . . . . . . . . . . . . . . . . . . . . . . 215.5 이스라엘 자치체들의 법 . . . . . . . . . . . . . . . . . . . . . . . 22

6 결론 23

7 법의 기원: 생각해 보기 2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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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약

Robert L. Kidder, Connecting Law and Society: An Introduction to Re-search and Theory, Englewood Cliffs, New Jersey: Prentice-Hall, 1983 중

에서 제5장을 번역한 것이다. 번역문의 전부 또는 일부를 상업적인 목적 또는

방법으로 이용할 수 없음을 밝혀둔다.

지금까지 살펴본 관습이론과 구조이론은, 비록 법의 기원에 관하여 대립되는 설명을

제시하고는 있지만, 사회과학에서는 같은 지적 전통에 속하는 것들이다. 이들 양자가

공유는 부분을 비판적 (또는 갈등적) 관점이 공격하고 있다. 이 세번째 입장은 다른

사회적 메커니즘에 의하여 사회통합이 달성될 수 없을 때 법이 등장한다는 주장을

거부한다. 이러한 수동적인 진화이론(공백을 메우는 법)에 도전하는 비판이론은

법을, 사회의 지배엘리트들이 다른 계급에 대한 지배력을 확립 ·유지하기 위하여

개발한 장치라고 파악한다.

앞으로 보게 되겠지만, 비판이론은 법형성의 결정적인 인자로서 갈등과 권력을

강조한다. 법과 법제도에 의하여 유지 ·심화되는 불평등에 주목하는 것이다. 따라서

비판이론은 모든 법형식과 법적 행위를 다루고 있긴 하지만 특히 법의 희생자인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의 경험을 주로 취급한다.

1 권력, 계급지배, 그리고 법: 역사적 사례

1.1 밀렵꾼과 블랙법

비판적관점이실제로어떻게적용되는지예시하기위하여영국법제사의한페이지를

들추어보기로 한다. 영국법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이인클로우저 및 이와

연관된 일련의 사건들이다. 인클로우저는 토지에 울타리를 치고 경비원을 두어 이를

사적 소유의 대상으로 삼는 과정이었다. 현대인들에게는 그리 놀라운 조치로 여겨지

지 않지만, 당시의 영국 농부나 빈민들에게 이것은 생존의 기회와 관련된 중대한

변화였다. 그 전까지 토지는 봉건적 권리 ·의무의 대상으로서 복합적인 사용 관행

하에 놓여있었다. 인클로우저는 이러한 봉건적 관계를 종식시키는 움직임이었고,

토지를 하느님으로부터 빌린 “신성한 위탁물”로부터 시장에서 거래되는 재산권으로

변모시키는 것이었다.

지주들은 땅없는 자들로부터 토지를 보호하기 위하여 17세기말부터 일련의

법률을 통과시켰다. 그것은 사소유지에서는 토지소유자만이 사냥할 수 있는 권리를

보유한다는 내용의 법률이었다. 사슴, 다람쥐, 토끼, 들새 등은, 과거에는 누가

어디에서 발견하더라도 합법적으로 이들을 사냥할 수 있었는데, 갑자기 “보호받는”

동물이 되었다. 이제 귀족들, 즉 공작이나 백작 기타 지주들만이 이들 사냥감을 잡을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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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P. 톰슨은 자연자원에 대한 통제를 확대하려는 귀족들의 욕구의 결과로서

야기된 투쟁을 상세하게 묘사한 바 있다.[27] 인클로우저에 대한 저항은 사냥이

금지되기 이전부터 이미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사냥금지법으로 인하여 저항은

더욱 거세지고 조직화되었다. 고용된 경비원들의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블랙”(위

장을 위해서 얼굴에 검정칠을 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불리는 집단들은

교묘한 기술로 사냥감을 뒤쫓아 잡곤 했다. 밀렵꾼들의 놀라운 성공은 귀족들에겐

골칫거리였다. 이에 지주들은 블랙법이라고 알려진 일련의 법률을 만들어 밀렵이나

사슴사냥을 박멸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행위는 사형으로 처벌되었고, 단지 얼굴에

검정칠을 한 것만으로도 중범죄에 해당하게 되었다.

톰슨에 의하면 블랙법과 이를 집행하기 위해 세워진 법원들은 블랙들을 체포하고

처벌함에 있어 단지 산발적으로만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블랙들을 비롯한 일반

농부들의 입장에서는 사냥은 하느님이 부여한 권리였다. 대대로 그렇게 해왔고

또한 그렇게 할 권리가 있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의 이런 관습은 귀족들의

법률에 의하여 정면으로 공격당했던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싸웠다. 밀렵을 둘러싼

투쟁은 수십년동안이나 계속되었다.

그런데시간이흐름에따라투쟁의성격이변화하였다. 당시영국사회는계급구조

전체가 중대한 변화의 도정에 있었다. 토지를 기반으로 부와 권세를 누렸던 귀족들은

산업과 상업을 통하여 부를 획득한 새로운 계급에게 권력을 넘겨주어야 했다. 모험적

사업의 성공으로 번영하게 된 이들 신중간계급은 이제 보다 많은 정치적 권력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요구한 것 중 하나가 밀렵금지법의 전면적 수정이었다.

토지를 소유하지 못한 계급이었기에 그들도 위 법률에 의하여 사냥을 금지당했다.

그러나 영국에서 사냥은 위신과 여가와 권력의 상징이었기에 이들 중간계급도

그러한 상징의 옷을 걸치길 원했던 것이다. 따라서 스포츠를 위한 사냥이 귀족들에게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도 허용되도록 개혁을 요구했다.[16]19세기동안 그들은 “모든 사람”에게 사냥을 허용하는 개혁입법들을 통과시키

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16] 그러나 이들이 통과시킨 법률에는 새로운 제한사항

(사냥에는 땅주인의 허가가 필요하다는 등의 규정)이 담겨 있었기 때문에, 가난한

시골사람들은 여전히 합법적으로 사냥할 수가 없었다. 19세기 동안 시골빈민의

경제상황은 악화될대로 악화되었다. 영농방법의 발달로 시골에서는 안정적인

직업이 사라지고 계절적 실업이 만연했던 것이다. 따라서 새로운 법률이 규정대로

지켜진다면 빈민들은 중요한 식량원 하나를 상실할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그들은

스포츠가 아니라 식량을 위해서 사냥할 따름이었다.

이들 법률에도 불구하고 밀렵은 멈출 줄을 몰랐고 그 양은 계절에 따라 오르내렸

다. 밀렵은 다람쥐, 토끼, 들새 등을 잡아 부족한 영양을 보충하는 고대적 관습의

지속일 뿐이었던 탓이다. 법률규정이나 판사의 결정에도 아랑곳없이 빈민들은

수십년동안 작은 동물들을 사냥했고, “범법”행위를 판사들과 “합법적인” 중간계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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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꾼들 그리고 지주들의 면전에서 자랑스럽게 떠벌렸다. 중간계급은 처벌의

강화와 더욱 가혹한 집행방법으로(예컨대 새로 조직된 경찰력의 동원, “정지 신체

수색권”을 통하여 사냥 도구 및 무기를 적발할 수 있도록 한 입법 등으로) 이에

보복했지만, 이들 법률과 법원은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싸움은 19세기 내내 승부도

없이 계속되었다.

여기서 관습을 직접적으로 공격하는 법의 사례를 발견할 수 있다. 사냥에 관한

관습적 권리를 따랐던 사람들은 이제 범죄자로 규정되었다. 비판이론가들은 이

사례를, 법은 기존 관습의 공식적 표현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정면 반박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수 세대에 걸쳐 빈민들에게는 법을 조롱하는 것이 관습이 되었던 것이다.

이 사례는 구조적 조건으로 인하여 사소유권에 관한 법률과 법원이 필요하게

된다는 구조주의자의 주장에도 도전한다. 이스라엘 모샤브에서 사소유 제도가

불안정한 조건을 야기하여 공식적인 법이 필요하게 되었다는 슈바르츠의 주장을

상기하라(제4장). 그러나영국에서결정적이었던것은, 사적소유로의이행이가져온

의도하지 않은 부산물이 아니었다. 오히려 사적 소유란 특정계급이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공격적으로 추구한 불평등한 특권의 체계였다는 점이 중요하다. 법적 제도는

특정계급이 빈민들의 관습적 행동을 근절하기 위하여 사용한 억압의 수단이었다.

법과 사소유권간의 관계라는 외양적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실제 구조주의와 갈등이

론은 이렇게 서로 상반되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따라서 법과 법제도의 기원에 관한

설명도 상반될 수밖에 없다.

1.2 범죄, 노동, 부랑자법

비판이론의 두번째 사례는부랑자법에 관한 역사적 연구이다.[5] 이 사례에서 우리는

동일한 내용의 법규정이 지배계급의 구성 및 이해관계의 변화에 따라 어떻게 달리

해석되는지를 볼 수 있다.

근대 미국 경찰이 사회의 낙오자나 “이상한” 사람들을 도시의 “미관”을 위해서

거리에서 몰아내는데 사용했던 부랑자법은 1348년 영국을 휩쓴 페스트(흑사병)에

그 역사적 기원을 갖는다. 페스트는 인구를 절반으로 감소시켰고 대다수 노동력의

파괴로 영국 경제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넓은 장원을 소유한 귀족들은 이미 노동력의 부족을 겪고 있었다. 도시의 새로운

산업이 장원의 경영에 필요한 값싼 노동력을 빨아들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

부랑자법은 말할 것도 없이 다음과 같은 목적에서 만들어졌다. (자유노동자든 예속

노동자든)노동자로 하여금 저임금의 노동에 순응하도록 만들어, 지주들이 싼값에

노동력을 구할 수 있도록 할 목적”이었던 것이다.[5, 69쪽] 최초의 부랑자법은 모든

“신체건강한” 사람은 흑사병 창궐 이전의 급료에 일해야 한다고 규정하였다. 더 높은

임금이나 더 좋은 보수의 직업을 구하는 것을 금지한 것이다. 더욱이 “신체건강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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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에게 금품을 제공하는 것도 금지되었는데, 이들이 노동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다.

엄격한 것이긴 했으나, 최초의 부랑자법은 의도한 효과를 거의 거두지 못했다.

판사들이 이것을 제대로 집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법의 휴면상태는 영국

사회가 봉건제를 이미 상당히 탈각하고 있었다는 데 원인이 있다. 한창 성장하고

있던 산업부문은 자유노동 (가장 보수가 좋은 직업으로 노동자들이 자유로이 이동할

수 있는 것)을 요구했고, 이것은 지주들의 이해관계를 물리칠 수 있었다. 이러한

권력이동이 심화됨에 따라, 부랑자법의 초점에도 변화가 생겼다. “정직한 직업”을

갖지 않은 사람을 처벌하는 규정은 그대로였지만, 강조점은 “정직한”이라는 단어에

놓여졌다. 정직함은 직장을 갖는 것을 의미하게 되었고, 이제 부랑자법은 새로운

직업적 범죄자 집단에 대처하기 위한 것으로 재해석되었다. 상업계의 리더들은

도둑과 노상강도(로빈훗을 기억하는가?), 깡패들이 자신의 사업을 위협하고 있다고

느꼈다. 그래서 부랑자법을 동원하여 무역로를 청소하고 안전한 상거래를 확보하려

했던 것이다. 부랑자라고 덮어씌움으로써 상인계급은 “의심스런 인물”들을—실제

범죄행위를 저지르지 않았더라도—투옥할 수 있었다. 후에 부랑자법은, 상인들간에

불신의 씨앗을 퍼뜨림으로써 상거래를 위협했던 여러 사기행각을 공격할 수 있도록

또다시 수선되었다.

이렇게 부랑자법은 새로운 사회계급이 권력의 사다리를 올라가기에 유리한

조건을 확보하는 데 사용되었다. 때에 따라 이 법률은 “범죄적 요소”를 공격하는 데

이용되었는데, 부랑자 여부를 결정함에 있어 폭넓은 재량을 당국이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동으로부터 범죄성으로 강조점의 이동한 것은 구 지배계급에

대한 새로운 지배계급의 승리를 직접 반영하는 것이었다. 이 법률의 역사는 이것이

어떤 관습(이를테면 노동은 선한 것이다라는 관념)에서 유래된 것이라거나, 혹은

관습의 변화에 따라 변화하였다는 것을 보여주지 않는다. 오히려 이들 법률은

쇠퇴하는 권력을 부여잡으려는 한 엘리트 계층에 의하여 만들어져서, 성장하는

권력을 강화하려는 다른 엘리트 계층에 의하여 접수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비판이론은, 법이 상업과 산업을 보호함으로써 사회 전체의 “균형”을 유지하려

했다는 구조주의적 해석도 거부한다. 블랙법을 비롯한 밀렵금지법처럼, 부랑자법도

계급적 이해를 둘러싼 갈등의 표출이었다. 이로써 법은 오히려 불균형과 갈등에

기여했던 것이다.

2 합의에 대한 거부

비판이론의 주요 특징 중 하나는 관습이론과 구조이론이 근거하고 있는 합의의

가정에 도전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분쟁사건으로 인하여 위협받는 사회제도들로부터

그사안을 “떼어놓는”방식의하나로법을이해하는보하난의관점(제2장과제3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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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것)에는, 이로써 사회적 안정이 유지되어 모든 사람들이 이익을 얻는다는 가정이

깔려있다. 그는 계급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사실까지 부인하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사회제도를 보호함으로써 모든 구성원의 복지에 기여하는 체계로

법을 이해한다. 마찬가지로 구조주의자가 토지의 사적 소유나 인구증가의 불가피한

결과로 야기된 조직의 문제를 말할 때, 그는 사회 자체의 구성에 대한 위협과 따라서

모든 사람의 복지에 위협이 생겼음을 의미하고 있다. 그래서, 관습이나 동료집단의

압력이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면, 사람들은 현명하게도 법이라는 보다 효과적인

사회안정책에 의지하게 된다고 한다.

2.1 법은 갈등과 불평등을 조장한다

오스틴 터크는 관습이론과 구조이론을 뭉뚱그려 하나의 범주, 즉 도덕적 기능주의로

불렀다.[28] 법에 관하여 제기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사회과학적 질문을 도외시하기

때문에, 이들 이론은 근본적으로 오류라는 것이다. 제3장과 제4장의 모든 이론은

법이 갈등을 줄이고 사회관계를 안정화하는 기능을 수행한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이들 이론 중 어떤 것도, 비판이론가들이 의심쩍어하는 것에 관한 질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즉, 법이 과연 안정화를 가져오고 갈등을 감소시키는가? 아니면 오히려

사회관계를 불안정하게 하고 갈등을 초래하는가?

법은 어디에서 오는가? 도덕적 기능주의는 불안정을 가져오는 조건들(관습의

약화, 인구 증가, 사적 소유 등)에 주목하면서, 법은 “균형”을 회복하는 장치라고

본다. 비판이론은 사회의 주된 갈등에 주목하면서, 법은 (“균형을 회복하기” 위

해서가 아니라) 적대적 계급의 일방이 타방에 대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장치의 하나라고 본다. 그들은 때로는 평화 못지않게 갈등이 계급적 목적에

부합한다고 여긴다. 따라서 법은 갈등을 잠재우기도 하지만 갈등을 조장하는 데

쓰이기도 하는 것이다. 영국의 중간계급이 밀렵금지법을 동원한 것은 분명 빈민들의

분노를 잠재우려 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수십년간의 법을 둘러싼 투쟁을 통하여

공동재산에 대한 빈민들의 몫을 줄이고 또 쇠퇴하는 귀족계급에 대한 그들의 우위를

확립하려 한 것이었다.

2.2 왜 적나라한 폭력이 아닌가

이렇게 비판이론은 관습이론과 구조이론의 합의 가정을 공격했지만, 사실 합의가

법체계의 목적인 것처럼 보인다는 골치아픈 문제를 처리해야만 했다. 부유한 계급이

빈민들을 지배하려 한다면 왜 하필 법을 사용하는가? 무장한 군대를 동원하여

복종을 얻어내면 안 되는가? 법은 불법적 계획을 저지할 수 있는 권력을 판사나

법규에 부여함으로써 지배계급의 권력을 견제하고 있지 않은가? 이를테면 영국

귀족들은 왜 밀렵꾼들을 그 자리에서 총으로 쏘아 죽이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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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마르크스주의 이론은 이런 문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기 때문에 비판받아

왔다.[26] 법을 지배의 도구로 보는 초기 마르크스주의는, 심지어 최근의 몇몇

주창자까지도[22], 하층계급이 지배계급에 저항할 수 있는 길을 법이 제공하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를 무시해 왔다. 법은 단순히 지배계급의 권력장악을 강화하는

수단만은 아니다. 법은 보편적 정의, 합의에 관한 언어—법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라는 관념—를 포함하고 있다. 왜냐면 이로써 지배계급은 자신들의 지위를

위협하는 세력에 대하여 연합전선을 구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법의 지배”라는

표상을 통하여 빈곤계급의 저항에 찬물을 끼얹으면서도 실제로는 불균형한 체계적

결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스탠리 다이아먼드는 적나라한 폭력보다 법이 더 효과적인 지배도구라고 한다.

법은다양한관습적요소를체계속에포섭하고있는데, 이로써사람들은법이자신의

이익에 봉사하고 있다는 환상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8] 다이아먼드에 따르면,

법이작은집단들(부족, 봉건장원, 교회, 소수민족등)의관습을 “잡아먹으며” 성장해

왔다는 데 현대법의 사악한 천재성이 존재한다. 이것은 노골적인 지배를 통하여

지방적 관습을 파괴하려는 일념에서 현대법이 만들어졌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다양한 지방적 집단들의 관습을 고립화시키고 이를 중앙권력을 정당화하는 쪽으로

변용함으로써 법이 성장했다는 의미이다.

중앙집권화, 즉 산업생산의 기업화와 함께한 근대 민족국가의 성장은 근대법의

성장과 동의어이다. 근대정치체제는 법을 통하여 지배한다. 법은 이들 지방적

집단(부족, 계급, 마을, 소수민족, 단체 등)의 독자적 권력을 파괴함으로써 성장해

왔다. 이들의 관습은 “진보”의 도정에 있었으나 이제 법에 흡수되어 버렸고, 이들

집단으로부터 권력을 탈취한 법은 정당성의 옷을 걸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관습 변용의 배후에는 온순한 산업노동력의 확보라는 목적이 있었다.

관습에 대한 직접적 공격은 소비에트 중앙 아시아 사례에서 보았던 것처럼 집단적

저항만 촉발시킬 것이다. 그러나 법이 다양한 집단의 관습을 포함하는 것처럼

보임으로써 지배계급은 이들의 조직적 저항을 분산시킬 수 있었다.

갈등이론은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신성한 것으로 여기는 법—이를테면 개인의

근본적 자유를 보장하는 권리장전같은 것—에 특히 주목한다. 권리장전은 대단히

교묘한 속임수의 하나이다. 법률과 법절차에 있어 개인적 권리에 우선권을 부여함

으로써, 현대법은 지방적 집단의 지도자들에게서 권위를 탈취했다. 이들의 독자적

권위가 새로운 지배계급의 권력장악에 방해가 되었던 것이다. 개인적 권리의 법적

보장은, 겉으로는 과거의 미개한 독재로부터 개인을 보호해주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국가의 독재로부터 우리를 지켜줄 보호막을 빼앗아 간 것이다. 지방적 집단으로부터

국가의 수중으로 권위가 이전됨으로써 국가지배로부터 개인을 보호해줄 지방적

사회단위가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부족구성원들이 족장의 결정에 도전하여

국가법정에 제소하면 족장의 권위는 추락하게 된다. 국가법정에서 판사가 고려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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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은 (부족구성원으로서가 아니라)시민으로서의 개인적 권리뿐인 것이다. 멕시코

B마을에서 말 안듣는 자식들이 국가법정과 법률에 호소했을 때 어른들의 권위는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던 것이다.

클로크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개별 사건이나 개별 거래에 관심을 두므로 법은 어떤 경우에도 개인을

기본단위로삼는다…법적분쟁에연루된사람은집단으로부터유리되어

특별한 존재로 취급되고, 각 사건은 여타 사건과 다른 것처럼 보이게

된다… 사회적 투쟁이나 정치적 운동도 개인 구성원의 사건들로 분리된

다. 보다 강력한 집단적 언술은 배제되고 개인적 언술만이 남는다…[6,69쪽]

현대법 덕분에 기업의 소유주나 경영자는 “법인”이라는 신화의 뒤편으로 숨을

수 있다(고객이나 이웃, 또는 사회 전체에 대하여 책임을 지는 것은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이 아니라 기업 자체가 된다). 반면 현대법은, 개인적 권리와 개인적 의무 개념을

사용함으로써, 성난 흑인 게토 주민의 주장, 즉 자신이 소요에 참가한 것은 집단적

억압에 대한 집단적 대응으로서 정당한 것이었다는 주장은 무시한다. 법은 재계

지도자들이나월스트리트투자가들의집단적요구에는비위를맞추지만, 미국사회의

흑인들의 집단 이론은 거부하고 있다. 집주인이 난방시설을 고쳐주지 않으면 흑인

세입자들은단지흑인이라는이유로, 그리고더나은집을구할처지가못되기때문에

추운 겨울을 고통스럽게 인내해야 한다. 하지만 법은 이런 문제에 대하여 개인적인

통로(집주인에게 소송을 거는 것)만 열어놓고 있다. 법은 문제의 근원을 도외시한다.

법적인구제수단을선택한흑인은불필요한소송에시간과돈을탕진하지만근본적인

문제는 여전히 미해결로 남아 있는 것이다. 다른 세입자들이 동일한 통로를 선택하면

할수록 그 집단은 더욱 분산될 것이고, 집단적 문제에 대한 집단적 대처는 달성하기

어려워진다.

이러한 분산화 ·고립화의 적나라한 사례를 나치 독일에서 찾을 수 있다. 독일

정부는 아이들이 부모를 감시하고 부모의 잘못을 경찰에 고발하도록 했다. 이러한

사적 관계에 대한 침입을 나치는 “게르만 민족”의 영광이라는 정치 이데올로기로

포장했다. 이것은 사람들의 지방적 단체에 대한 충성(관습)을 히틀러 국가의 중앙집

권적 정치 목적에 이용한 일종의 잡종 신화였다.

갈등이론가들은 히틀러의 통치방법이 일시적인 변종에 불과하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고 믿는다. 그것은 “법의 지배”를 지향하는 현대적 경향의 논리적 결과라는

것이다. 법이 관습 집단에 대한 충성을 짓밟으며 침투하는 것은 지난 수세기간의

법발전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법과 관습의 관계에 대한 갈등이론의 주장을 제3장에서 살펴본 관습이론과

비교해보자. 양자 모두 법이 관습적 관념을 반영한다는 점에 견해를 같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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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관습이론에서는 법화(法化)가 관습이 지켜지도록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

보는반면, 갈등이론은법의관습적내용을그러한관습을가진집단을거세하기위한

연막장치에 불과하다고 본다. 현대법이 관습의 언술을 포함하고 있다고 해서, 관습의

권위를 드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보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현대법에 포함된 관습은

전통적 맥락을 박탈당한 관습이고, 전통적 집단을 자본주의적 시장 논리와 행위로

유혹하는 매춘부와 같은 것이다. 법은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명확히 밝혀주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인데, 법은 우리로부터 멀리 떨어진 정치가와 관료들이

만들고 집행하는 것이고 또한 그 복잡한 발전과정을 우리가 제대로 따라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어떤 갈등이론가들은 법은 계급관계를 신비화한다고 말하기도

한다—법은 착취의 현실을 감추고 있는 것이다.[26, 250쪽] 관습의 지배하에서는

관습이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 명확히 알 수 있다. 관습은 모두가 규칙을 아는

경우에만 작동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규칙을 동원할 임무를 맡은

독립된 집행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 우리는 합의에 관한 딜레마(비판이론의 주장처럼 법이 지배를 위해 사용된

다면, 왜 법이 가난하고 힘없는 자를 보호하는고 있는지 설명하지 못한다는 문제)를

해결할 대답 하나를 발견했다. 법은 종종 적나라한 폭력보다 더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지배수단이라는 것이다. 지배계급은 상황에 따라 두 수단 중 하나를 선택적으로

사용하겠지만…

이와 관련하여 터크는 법체계를 통제하는 자가 누릴 수 있는 다섯가지 권력을

정리한 바 있다.[28, 276쪽] 첫째, 법은 피지배자들에게서 물리력, 즉 폭력을 사용할

수 있는 권력을 빼앗는다. 법을 통제하는 자들만이 이런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

여기에는 경찰, 판사, 간수들뿐만 아니라, 민간인이라도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하여일상적으로법을동원한다면여기에포함된다.둘째, 법은경제적행위에대한

보상과처벌의체계를마련하고있으므로법을통제하는자들은경제적권력도가지게

된다. 특히 세법과 재산법은 법을 통제하는 자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경제적 결정을

이끌어낸다. 셋째, 법체계는 정치적 권력도 가져다 준다. 법은 특정한 정치구조나

정치규범을 우선시한다. 법과 정치는 밀접하게 연계되어 통제를 강화한다. 넷째,

법체계는 복종을 이끌어내는 이데올로기 환경을 만들어낸다. 법의 존재는 의문을

제기할 수 없는 사회적 현실이 된다. 죽음이나 세금과 마찬가지로 법은 불가피하고

불가결한 것이라 믿게 된다. 이러한 내면화된 믿음은 “기존 정치의 기본적 규칙에

대한 일반적 복종”을 이끌어낸다. 이것 때문에 우리는 “우리 두멧사람들” “우리 멋진

친구들” 또는 “대부”보다는 “우리 나라” “우리의 지도자” “모국” 또는 “인류”에

대하여 보다 충성심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다섯째, 터크에 따르면, 법은 저항을 분산시키는 권력을 제공한다. 법은 사람들로

하여금 이익을 추구할 수 있는 더 나은 길을 버리고 특정한 행위유형에만(예컨대

소송이나 법개정운동)에만 관심을 집중하도록 만든다. 예를 들어 인도 독립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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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마하트마 간디는 인도인들에게 영국 법원을 보이코트할 것을 촉구한 바 있다.

시간과 정력을 서로에 대한 소송에만 낭비하고 있는 동안, 영국을 몰아내려는 그들의

진정한 희망은 점점 멀어지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비판적 관점을 요약해보자. 비판이론은 사회통제의 특수한

수단으로 법을 바라본다. 법은 모든 인간사회에서 보편적으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계급에대한권력을공고히하기위하여역사의특정시기에특정계급에의하여

만들어지는 것이다. 칼 마르크스의 이론을 일정 부분 추종하는(모든 영역이 아니라

몇몇 영역이 그렇다는 의미) 비판이론가들에게 있어, 법은 부를 불평등하게 분배하는

과정의 일부분이다. 그리고 법은 이러한 불평등을 유지하려는 행위를 촉발시키게

된다.

3 엘리트간의 갈등: 지배계급은 존재하는가?

권력과 부를 위한 투쟁이 모든 사회에 꼭같은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다. 특정 사회의

법의 모습은 지배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지배에 저항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이기도 하다.

비판이론은 “지배계급”이라는개념을지나치게단순하게파악한다고비판받았다.

복잡한 사회는 이익이나 가치가 서로 상충하는 다양한 엘리트 집단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누가 통치할 것이며 누구의 가치가 지배적이어야 하는가에 대해 심각한

갈등을 내부적으로 안고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누가 미국을 지배하는가? 물론 듀퐁사도 있고 록펠러가도 있으며

“보스턴 브라만”들도 있고 와스프 엘리트들도 있다. 하지만 그밖에도 대학(예:

헨리 키신저), 교회나 종교운동(예: 제리 팔웰, 문선명, 마하리시 마헤시 요가, 빌리

그레이엄), 매스미디어(예: 편집장들, TV망 관리자들), 조직범죄, 대중운동(예:

마르틴 루터 킹, 평등권 수정조항 지도자들, 생태운동), 소수민족(예: 유대인이나

히스패닉의 로비)에 기초한 권력도 있다. 이들 다양한 집단들이 언제나 통일적으로

행동하지는 않는다—때로 그들은 서로 화해할 수 없는 갈등을 겪기도 한다. 영국

밀렵금지법 사례에서는 두 엘리트 계급(귀족계급과 산업기반의 새로운 중간계급)이

통제권을 놓고 서로 다투기도 했다. 법이 지배계급의 의지를 표현하는 것이라면,

지배계급 자체가 나뉘어져 있으면 어떻게 되는가?

3.1 영국과 유럽의 마녀 사업

유럽에서 이 문제는 마녀에 대한 고발과 재판을 둘러싸고 한동안 전개되었다.[7]대륙의 마녀사냥은 영국의 그것과는 사뭇 달랐다. 이러한 차이는 엘리트들이 절대적

권력을 확립할 수 있었는가에 직접적으로 기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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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는 거의 모든 경우 마녀가 하층계급 출신의 여자들, 특히 과부들 중에서

“발견”되었다. 악마와 계약을 맺었다거나 마법을 부린다고 고발되기 전에도 그들은

재산없는 버림받은 자들이었다. 고발인들도 대부분 하층계급 사람들이었다. 영국

법체계는 마녀임을 확인하고 입증하는 역할을 맡는 전문직을 일시적으로 발달시켰

다.(영국법에 의하면 마녀를 포함하여 어떤 범죄도 자백만으로는 불충분하고 증인의

증언이 있어야 입증되었다. 따라서 비밀스런 방법으로 진짜 마녀를 확인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고 주장하는 “전문적인 증인”계급이 생겨났다.) 영국 역사를 통틀어도

마녀로 사형당한 사람은 500–600명에 불과했다.

유럽에서는 사정이 사뭇 달랐다. 수십만명이 마녀로 몰려 사형을 당했다. 그들

대부분은 처음부터 자신의 범죄를 자백했다. 또한 그들의 다수는 가난한 자도 여자도

아니었다. 종종 그들을 귀족계급 상층부에 속했다. 마녀로 유죄판결을 받으면 그는

가족 재산을 완전히 상실한다. 마녀가 소유했던 많은 토지와 동산은 재판을 담당했던

공무원의 수중으로 넘어가는 것이 보통이었다.

대륙의 교회법에 따르면 유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마녀의 자백이 필요했기

때문에, 고문은 무제한으로 행해졌다. 고문은 언제나 자백을 이끌어냈고, 이를

본 일반인들은 마녀현상이 심각한 문제라고 여기게 되었다. 고문은 또한 고발의

연쇄반응을 일으켰다—마녀는 자백할 때 공모한 동료의 이름을 불어야 했던 것이다.

각 마녀마다 두세명의 다른 마녀의 죄를 실토함으로써, 화형장에 끌려가는 마녀의

수와 함께 교회국가의 새로운 지배계급에게 이전되는 재산과 중앙집권적 정치적

권위에로 옮아가는 권력의 양은 차츰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커리에 의하면, 유럽대륙에서 마녀사냥은 주요한 사업의 하나가 되어갔다.

대륙법은 영국법과 같은 제한을 거의 갖지 않는 억압적 체제였기 때문이다. 반면,

영국에서는 당국에 가해지는 제한으로 인하여 “마녀 사업”은 훨씬 위험했고 이윤이

별로 나지 않았으므로 잠재적 고발자들에게 매력적인 것이 못되었다.

커리는 대륙법과 영국법이 차이나는 원인을 설명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블랙법의 사례에서 이에 대한 답을 시사받았다. 영국의 엘리트는 교회의 지원을

받는 대륙의 엘리트에 비하여 훨씬 파편화되어 있었고 내분에 휩싸여 있었다. 대륙의

억압적 법체계는 이기적인 지배계급이 인민들의 공포에 기대어 그들을 조작함으로써

발달시킨 것이다. 지배계급은 이러한 “제약없는” 과정을 통해 점점 부자가 되어갔고

점점 강력해져 갔다. 몇몇 조건의 결합으로 인하여 영국 공무원들은 이러한 부정한

이득을 누릴 수 없었다.

3.2 국가는 또하나의 계급

비판이론가들은 최근 현대사회에서의 엘리트의 이질성을 무시한다는 비판—“지

배계급”을 너무 단순하게 파악한다는 비판—에 대한 몇가지 답변을 시도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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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는, 국가가(따라서 법도) 비록 처음에는 지배계급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만든 것이긴 하지만 이제 독자적인 생명력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1, 15] 독립된

전문가에 의하여 운영되는 독자적인 법체계를 수립함으로써, 경제적 “지배계급”은

일종의프랑켄슈타인—경제적엘리트로부터일정정도독립적으로작동하는힘—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국가는 지배계급 내 분파들간의 갈등을 이용할 수 있었고 이로써

독립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국가는 지배권을 확보하기 위한 끝없는

투쟁과정에서 또하나의 경쟁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또다른 답변은, 지배계급 내의 연대성을 달성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에 착

안한다. 경제가 복잡해지면 개별 이익을 위하여 배반을 시도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법은 다른 계급에 대한 지배계급의 권력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로도 작용하지만, 동시에 지배계급 내 분파들간의 관계를 안정화시키는

기능도 수행한다. 법은 특정 계급이 타 계급에 대한 지배를 유지하기 위한 합의이자

연합전선이라는 것이다.[17]이러한 주장의 놀라운 특징은, 허약한 옛 주장을 보강하기 위하여 뒷문으로 은밀

하게 구조주의적 논변을 채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법이 지배계급의

연대성을 유지하는 기능을 수행한다면, 제4장에서 구조주의자들이 말한 바처럼,

전체 사회의 연대성을 유지한다는 주장도 똑같이 성립할 수 있지 않을까? 법이

엘리트들을 구조화할 수 있다면, 전체 사회도 구조화할 수 있지 않을까?

이에 대한 비판이론의 답변은, 상이한 계급들간의 투쟁이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법이 갈등을 잠재우기보다는 갈등을 양산하고 있다는 사실을

도덕적 기능주의는 도외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4 갈등, 개혁, 그리고 지배

법을 둘러싼 계급갈등은 때로는 확연히 드러나지만 때로는 은밀해서 잘 드러나지

않는다. 히틀러가 유럽의 유태인들을 절멸시키라고 명령했을 때, 부드러운 관료적

용어와 절차를 사용하여 법의 옷을 걸치고자 했던 나치의 노력을 무시한다면 누구나

명백히 적나라한 계급갈등을 감지할 수 있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억압적인

“아파트헤이트 법률”에서 계급지배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런

법률이 “남아공의 경제기적에 동참했던” 여러 인종집단의 관습을 보전하기 위한

것이라는그들의주장에우리는어처구니없어한다. 또한 1863년이전미국의노예제

법률이 억압적이고 착취적이었다는 비판이론가의 주장도 어렵지 않게 수긍할 수

있다.

그런데 비판이론은 현대법체계가 작동하는 곳이면 어디서나 이런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가난하고 억압받는 자를 보호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는

것처럼 보이는 법에서도, 권력에 대한 제한을 중앙권력의 불길에 대한 부채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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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시키는 중요한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절에서 우리는 4가지 개혁 사례가 비판이론적으로 어떻게 해석될 수 있는지

보게 될 것이다. 아동노동보호법, 경찰의 반부패 개혁, 백인 착취로부터의 미국

인디언 보호, “저개발”국가에 대한 원조제공 등이 그것이다.

4.1 아동노동보호법: 독점의 창출

어린이는 학교에 가야하고 “탐욕스런 수전노”만이 그들을 공장이나 광산 기타

단순직종에서노동하게할것이다. 오늘날 “누구나그렇게알고있다.” 그러나현재와

같은아동보호는 19세기말부터 20세기초까지의길고도고통스런싸움의결과물이다.

아동의 고용을 금지한 아동노동보호법이 통과되기 전까지 미국 경제는 이들의 값싼

노동 위에서 번영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개혁론자들은 아동노동이 결과하는 문맹과

건강 악화, 무기력증과 도덕적 타락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수십년간 벌였다. 개혁에

대한 지지를 일부에서는 “급진적”이라고까지 여겼다(펜실베이니아 대학의 교수였던

스코트 니어링은 개혁운동에 대한 열성적 지지자라는 이유로 해고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많은 지지자들은 개혁을 공동체의 품위에 관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도덕적 기능주의는 다음과 같이 해석할 것이다. 아동노동보호법은 아동과 가족생

활을보호하는강력한미국적관습을재제도화하였다거나또는이러한법률의통과로

법체계는 어떤 구조적 불균형을 시정하려 하였다고… 점잖은 미국인이라면 유령같은

모습의 어린애들이 하루 12시간 이상씩 공장에서 잔혹하게 노동을 착취당하여

그들의 건강이 파괴되고 읽고 쓰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는 사실에 혐오감을 느낄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플랏트에 따르면, 아동노동 개혁운동은(이것은 미국 노동자들의 노동환

경을 규제하려는 이후의 다른 법률들에도 적용될 수 있다) 어떤 사악한 지지세력의

원조를 받아 전개되었다.[21, xxi쪽] 이것은 비판이론적 관점에 부합한다.

이들 법률의 광범위한, 그러나 잘 알려지지 않은 효과의 하나는, 값싼 아동노

동(그리고 여성노동)에 근거하여 겨우 생존하고 있던 조그만 공장과 기업들이

대거 퇴출되었다는 것이다. 아동노동 개혁운동의 지도자들 다수는 대기업 사장

부인들이었고, 운동 기금도 작은 공장의 퇴출로 경쟁상 이익을 보게되는 대기업들의

기부에 많이 의존했다. 겉보기엔 자비로운 듯이 보이는 개혁운동이, 경쟁적 시장에서

통제력을 확대하는 수단으로 입법을 보았던 대기업들의 독점동기와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던 것이다. 개혁입법은 수많은 중소기업을 퇴출시킴으로써 미국 경제의

독점화를 촉진하였다.

플랏트는 잘못된 동기에 기초한 개혁운동가 모두를 비난하지는 않는다. 계급이

익을 조장함에 있어 발휘되는 법의 천재성은, 법의 진정한 효과를 잘 모르는 많은

사람들의 자발적 협력을 이끌어낸다는 것이다. 법은 아동과 가족의 신성함과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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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습을 “집어삼키는데”, 이 때 은밀한 조직적 이익에 봉사하는 행위를 끌어내기

위하여 법은 우리의 관습적 감정을 이용하는 것이다.

4.2 경찰 개혁: 중앙 통제의 수립

써피코, 이것은 수백명의 뉴욕 경찰관과 공무원들이 수백만 달러짜리 불법 마약

거래에연루되어있었다는사실을 “단신으로”폭로한뉴욕경찰관의이야기다.[18] 이이야기는 해피엔딩이다. 악당들은 체포되었고, Knapp 위원회가 범죄를 체계적으로

조사하였으므로, 이제 뉴욕 경찰은 정화되고 재조직되어 다시는 그러한 대량 부정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 기대되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 경찰개혁의 역사를 살펴보면, 써피코 사건은, 19세기 미국에 경

찰제도가 처음 도입된 이래 20년을 주기로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사건의 하나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24] 미국의 주요 도시는 모두 이러한 20년 주기를

겪어왔다. 부정으로 얼룩진 각 기간의 사이마다 정력적인 정치가들이 등장하여, 경찰

내에서 “악당들을 몰아내고” 뇌물, 정실주의, 금품강취, 기타 독직행위를 일소하는

운동을 전개한다. 개혁이 성공하면, 많은 수의 경찰관과 공무원들은 기소되어 감옥에

가고 벌금형을 받고 불명예퇴직을 당한다. 정치적 분위기는 쇄신되고 사람들은 이제

경찰의 청렴성을 기대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형태의 부패가 또다시 생겨난다. 새로운 유형의 개인적 비리에

새로운 방법의 조직적 부정이 더해지고, 도시는 금새 “평상시의 상태로 되돌아간다.”

이러한평상시상태가 20년간지속되면도시는또다른개혁운동에휩싸이는것이다.

그런데 겉으로는 (부패로 들어갔다가 다시 빠져나오는) 회전문처럼 보이지만,

개혁의 진정한 효과는 당해 도시뿐만 아니라 전체 미국사회에 있어 경찰의 성격을

바꾸는 것이고 경찰과 정치의 관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주기적 개혁은 경찰력에

대한 더욱 강력하고 중앙집권화된 통제를 낳는 과정이다. 초기에 경찰관은 각자의

출신 마을에 배치되었다. 경찰관은 그 지방의 일상적 구성원 중 한 명이었다. 경찰의

권위는 마을사람들을 인간적으로 지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나왔다. 경찰관은 지방적

지도자가 될 수 있었다. 경찰관의 소재, 개인적 습성, 행동방식에 대해서 사람들은

잘 알고 있었다. 경찰관은 마을의 청소년 사건에 대해, 상부에 보고하지 않은 채,

신속하게 “정의”를 수행할 수 있었다. 달리 말하면 각자의 “담당구역”에서 폭넓은

재량을 행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이러한 자율성으로 인하여 부패의 가능성이 생겨났다. 경찰관은

불법행위를 눈감아줄 수 있었고 사람들은 그의 침묵을 기대할 수 있었다. 경찰관은

일상적인 “호의”(예: 식당에서의 공짜 식사)를 제공받고 그 대가로 그의 지위에

관련된 호의를 제공할 수 있었다. 지역 경찰관들의 행동을 일일이 감시 ·감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무엇보다도, 그들의 구역 내 행동은, 비록 “부적절한” 행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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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함하는 것이긴 했지만, 근접성과 신속한 “길거리 사법”을 통하여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상태를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이러한 경찰의 모습은, 일본의 도시 경찰에는 여전히 남아 있지만[2], 미국에서는

개혁에 의하여 일찌기 제거되었다. 오늘날의 경찰 모습은 완전히 다르다. 현재 미국

경찰관은 순찰차로 구역을 순시하고 있고, 주민들은 그가 누군지 알 수 없다. 또한

대부분의 의사결정은 경찰본부의 감독자와 컴퓨터가 수행하고 있고, 그 결과는

무전으로 상시 지시되고 있다. 경찰의 통신수단의 변화, 도보 대신 순찰차의 등장,

상명하복관계의 수립, 각 지방 경찰본부의 중앙집권화, 재량권의 대폭 감소 등—이

모든 것은 “범죄에 대한 전쟁” 못지않게 반부패투쟁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기술의

발전, 특히 통신수단과 컴퓨터망의 발달도 이런 경향을 촉진했다. 하지만 이런

발명품들을 사용하려는 의지는 주로 중앙집권화의 압력에 기인한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일선 경찰관의 권위를 제거하려는 시도는 경찰을 “전문화”

하려는 지속적인 노력과 맞물려 왔다. 폴리스아카데미가 세워져 과거의 현장학습

(on-the-job training)을 대체하였다. 전문성 이데올로기는 대세가 되어, 책에서도,

연설에서도, 연방보조금 지급기준에서도 지지되었다. 대학과정을 이수하고 학위를

취득하는 등 자기 “개발”에 매진하는 경찰관이 우대되었다(현재 일부 도시에서는

학위를 가져야만 취직할 수 있다). 이런 추세는 부패의 원인이 “광주리 속의 몇몇

썩은 사과”—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교화되지 않은 몇몇 경찰관 개인—에 있다는

이론을 일정 정도 반영한다. 그 결과는 이런 것이다. 교육을 많이 받을수록, 경찰관

으로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권위는 감소한다는 것. 그리고 그 권위는 경찰본부와

경찰행정직으로 넘어간다는 것이다.

이상의분석으로우리는경찰개혁운동의의미를재해석할수있다. 개혁은부패를

제거하거나 범죄를 줄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경찰부패의 시장에서 경쟁을 제거하

는 것이다(합법적 경찰업무와 마찬가지로, 부패도 중앙집권화된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개혁으로 인하여 결정권한이 지방적 사회관계망으로부터 정치엘리트에

의해 통제되는 관료직으로 이전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개혁은 지배력을 확보하려는

중앙당국과 독자적인 연대성과 정체성을 유지하려는 지방적 집단간의 투쟁의 장이

된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고 따라서 “공정하게 취급되어야” 한다는 미명

하에, 이웃공동체는 지방적 권위체계의 일부분이었던 중요한 권위자 하나(도보로

순찰하는 경찰)를 박탈당했다. 그 대신 사람들은 익명의 순찰차와 “전문가들”에

의하여 감시당하게 되었다. 이제 사람들은, 플랫부시, 링컨파크, 켄싱턴, “리틀

이탈리아”등의 공동체 구성원으로서가 아니라, 시민으로서, 개인으로서 취급되고,

각자 자신만의 개인적 문제, 심리적 특성, 법적 다툼을 갖고 있는 대중의 일부분으로

간주된다. 공동체의 연대성을 파괴하는 다른 요인들과 더불어, 경찰개혁은 지방적

관습을 사멸시켰고, 그 대신 원격의 비인격적인 강력한 중앙정부를 등장시켰다.

이상의 두가지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개혁은 지배계급의 이익 추구를 은폐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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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단이 되기도 한다. 개혁은 공동선을 향한 진보라는 환상을 심어주면서, 새로운

지배방법과 착취방법을 은폐하는 것이다. 법은 이데올로기다. 그것은 복잡한 사회의

여러 다른 집단들을 동원하는데 봉사하는 믿음체계이고 가치체계이다.[26, 제8장]

4.3 미국 인디언의 “보호” : 은폐된 착취

때로 개혁은 보다 가시적인 형태로 지배를 드러내기도 한다. 캔사스 북동부의

포타와토미 부족의 사례는, 백인 땅투기꾼들과 철도사업자들이 연방인디언보호국과

법원을 이용하여 협약상 보호되는 토지를 부족에게서 빼앗아간 “합법적 방법들”에

관한 음울한 이야기다.[11] 부족 재산에 눈독들인 외부인들이 내부 파벌주의를

선동 ·이용함에 따라, 부족 자치권을 보장했다가 철회하는 등 정부가 부족의 권위를

쥐락펴락하는 과정을 둘러싸고 이야기는 전개된다. 연방헌법과 유사하게 “개인적

권리”를 보장하는 “부족 헌법”은 부족 권위에 대한 개인의 도전을 불러온다. 개인은

부족의 공동재산을 쪼개어 팔아버릴 유혹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또한 부족 지도자와

구성원간의 골이 깊어지는데, 정부당국은 언제나 추장에 도전하는 개인의 편에 섰기

때문이다.

경찰개혁 사례와 마찬가지로, 정부 정책은 개혁(부족의 자율성, 문화, 자결권의

보장)과 무분별한 기회주의(문화적 · 경제적 동화를 통한 인디언 “분리주의”의

근절 시도)를 반복한다. 의도야 어떻든, 이들 두가지 정책은 동일한 결과를 낳는다.

인디언의 땅은 백인 사업가와 정부측 이해관계인에게 넘어가고, 부족 내의 권위는

쇠퇴하게 된다.

오늘날 인디언 부족들은 잃어버린 땅과 수렵권 ·어로권을 되찾기 위한 소송에

나섰으나, 그들을 돕는 듯 보이는 법이 사실은 독자적인 문화적 정체성과 사회적

생존력을 파괴하는 방향으로 그들의 사고와 관계를 재편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

다.[19] 인디언 편에 서서 인디언의 권리를 위해 투쟁하는 “운동권” 변호사들조

차, 인디언들의 주장과 부족간 관계를 백인들 법정에 받아들여질 수 있는 용어로

변모시키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인디언들은 집단소유권과 부족통치권을 포기하고,

대신 개인주의적이고 합리적인 권리관계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되었다. 요컨대

재산의 시장성, 계약관념, 개인적 권리를 강조하는 백인의 “권리의식”을 받아들여야

했던 것이다. 부족이 스스로를 사업하는 기업으로 규정하지 않는다면, 법은 부족의

집단적 전통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기업으로서의 부족은 제너럴 모터스와

마찬가지로 경제적 규제와 회계감독 그리고 절차적 규준들을 준수하지 않으면

안된다.

정부의 인디언 정책을 개혁하기 위해 노력했던 선의의 변호사들도 결국 부족

성원들을 현대 시장권력의 통제체계로 편입시키는 역할을 담당했던 것이다. “인디

언의 자결권”을 보장하려 했던 개혁입법도 실제로는 “인디언 부족의 분산, 도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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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적 흡수”를 결과하고 말았다.[11, 91쪽]

4.4 저개발국 원조: 중심부 통제의 확보

비판이론가들은 미국 인디언의 경험을 제3세계에 대한 착취 일반으로 확장시키기도

한다. 제3세계란 “도덕적 기능주의”에서 “저개발”이라고 불리는 사회를 의미하는

비판이론적 용어이다. 미국 인디언들이 경험했던 파괴는 전세계적인 지배 확립

과정의일부분일뿐이다. 여기서도법은핵심적인역할을담당한다. 이과정의중요한

요소는 다음과 같다.

… 원주민 영토를 문화적, 상업적, 군사적으로 침략한다; 파벌을 만들

거나 이미 존재하는 파벌주의를 조장함으로써 원주민의 전통사회와

전통국가를 동요시킨다; 신탁통치, 보호령, “세력 범위” 관계를 통하여

괴뢰정부를 수립한다; 조약, 법원, 관료체제를 수립하여 이러한 관계를

제도화한다; 이러한 제도의 권위를 받아들이도록, 그리고 이러한 권위에

대한 도전을 제압하는 경찰력 ·군사력의 권위를 받아들이도록 원주민들

을 재사회화한다; 인종적 우월성, 기독교적 교리, 경제적 성장, 국가적

관심, 상호적 이익, 법과 질서 등에 근거하여—한 마디로, “문명화”에

근거하여—모든 과정을 합리화한다.[11, 92쪽]

포러는 비판이론의 최근의 발전 경향을 도입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종속이론

이라 불리는 저발전에 관한 이론이다. 종속이론은 저개발사회에 경제적, 군사적,

지적인 원조를 주어야 한다는 자유주의적 프로그램에 반대한다. 그러한 원조는

주는 자의 받는 자에 대한 통제를 강화시킬 따름이기 때문이다. 종속이론에 따르면,

원조는 저발전의 원인에 관한 그릇된 이론에 기초하고 있다.

종속이론에 따르면[29, 12], 제3세계(인도, 가나, 아프가니스탄, 알바니아 등)

또는 “선진”사회의 “후진”지역(인디언 보호구역, 미시시피강 주변의 농촌, 서부

버지니아광산촌, 메인주북부등)의저발전은단순히근대화의출발이늦었기때문이

아니다. 제3세계 주민들은 수세기 전에 살던 그대로 “과거에 묻혀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빈곤은 미개한 믿음, 전통, 미신 때문이 아니다. 빈곤을 벗어나고자

하는 그들의 희망은 “그들을 20세기로 이끌어낼” 미국의 재주나 원조, 투자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오히려 20세기의 필수불가결한 부분이다. 그들의 상황은 외부적 통제에

강압적으로 굴복당한 결과이다. 그들은 세계 경제 체제를 지배하는 중심부에 종속된

주변부이다. 주변부 사회는 값싼 천연자원과 노동력을 중심부에 공급한다. 필리핀은

마호가니를, 자메이카는 보크사이트를, 라이베리아는 고무를, 인도는 황마 ·차 ·

향료를, 쿠바는 설탕을 공급한다. 이들 사회는 모두 산업적 ·상업적 중심부(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 영국, 소련)에 천연자원을 공급한다. 중심부는 이를 원료로 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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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로 팔려나가는 소비재를 생산한다. 즉 중심부에서 주변부로 팔려나가는

것이다. 따라서 제3세계는 과잉생산을 흡수하고 있고 이윤율 저하를 막아주고 있다.

주변부 사회는 내수를 위한 산업을 발전시킬 수 없다. 그러한 시도는 중심부

산업의 높은 효율성에 의하여 좌절되기도 하고, 그러한 발전을 직접적으로 금지하거

나 세법 ·무역법 등으로 주변부의 경쟁력을 무력화시키는 정치적 지배에 의하여

좌절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중심부의 거대 산업은 가공스러운 경쟁 우위를 지니고

있다. 그들의 엄청난 사업 규모, 이미 확보된 판매망, 시장에 대한 독점적 통제력,

정부의 협조적 조세 및 관세 정책의 덕분이다.

저발전국가에서 새로운 천연자원이 발견되면 주민들의 생활조건이 개선되리라

생각한다면그것은오산이다. 종속이론은그러한발견이일반적으로주변부의빈곤을

가중시키고 중심부의 부와 권력을 강화시킨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자원의 채취

가 원주민들의 재조직화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평범한 농부들이 광부로, 플랜테이션

노동자로, 쿨리로 전업하게 된다. 가족은 흩어진다. 광산이나 플랜테이션 농장의

임노동자가 되려고 가정을 떠나기 때문에 전통적인 상호부조방식은 사라지게 된다.

임금은 유일한 수입원이 되고, 이것을 쪼개서 광산이나 플랜테이션 농장 소유주들

편인 정부가 부과하는 세금도 내야 한다. 또한 임금을 쪼개서 중심부로부터 배워

욕구하게 된 완제품도 사야 한다. 그러나 임금으로는 가족이 먹고살기에도 부족하다.

땅이 플랜테이션 농장으로 편입되거나, 영세하고 “불충분한” 농토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세금이 오르면, 할 수 없이 땅을 버리고 떠나야만 한다. 주변부 사회는

유랑노동자들—가족, 씨족, 부족으로부터 유리되어 일시적 임금으로 겨우겨우

살아가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이들의 막대한 숫자는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지만,

이들의노동력도중심부의노동절약형신기술의발달로점점쓸모없어진다. 똑똑하고

훈련받은 원주민은 중심부로 이민간다. 거기서 유용하고 보수 좋은 직장을 구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의 노동은 세계적 차원의 중심부 통제체제의 구축에 기여할 뿐,

고국의 독자적 발전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종속이론은 일본과 인도의 법발전의 차이도 종속이론을 지지하는 증거로 삼고자

할 것이다. 두 세기 가까이 영국의 지배를 받았던 인도는 오늘날 제3세계 국가 중에

서도 가장 가난한 나라에 속한다. 그러나 동시에 세계에서 가장 “발달된” 법체계를

가진 나라 중의 하나다. 한편 일본은 아시아에서 식민지 권력의 통치를 받지 않았던

몇 안되는 나라 중의 하나이다. 또한 인도에 비해서 대단히 낮은 법“발달” 수준을

보이고 있다. 종속이론은 인도의 자원을 대영제국의 이익에 복속시키는 도구로서

인도 법체계를 이해한다. 한편 일본은 독립을 유지하였기에 아시아에서 유일한

산업강국이 될 수 있었다.

종속이론의 결론은 이러하다. 제3세계 국가에 대한 원조로서 미국이 곡물, 전투

기, 법률가, 법전 등을 수출한다면, 제3세계 국가는 빈곤의 심화, 그리고 중심부에

대한 의존성의 강화만이 경험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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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예측의 비교

비판이론은 법에 대한 관습이론과 구조주의 이론을 비판하기 때문에 부쳐진 이름이

다. 제3장과 제4장에서 분석한 몇가지 사례들이 비판이론에서는 어떻게 평가될

것인지 알아보자.

5.1 인도의 영국 식민지법

비판이론이 관습이론의 “이중의 제도화” 관념이나 법이 관습에 부합해야 한다는

관념을 공격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살펴 본 바와 같다. 그렇다면 영국 식민지법에

대한 인도인의 반응은 어떻게 해석되는가? 그것은 보하난의 주장에 부합하지

않는가? 비판이론적 관점에서 보면, 인도에서의 영국의 행태는 보하난을 비롯한

관습이론가들의 주장을 반박할 수 있는 완벽한 증거이다. 비판이론은 인도의 영

국법을 종속이론의 핵심적 요소로 파악한다.[20] 영국이 인도를 영국 산업을 위한

대량의 공급기지로 만들었다는 것이 비판이론가들의 주장이다. 천연자원이 인도에서

영국으로 유출되었고, 완제품은 영국에서 인도로 팔려나갔다. 이런 흐름을 보호하는

역할을 맡았던 것이 바로 법이었다. 인도인은 영국 법정에서 끝없는 소송지연과

속임수를 겪었지만, 상품 흐름을 보장하는 영국법은 신속하고 정확하게 작동했다.

예컨대, 인도의 방적공장과 직조공장에서는 인도 면화를 사용할 수 없다는 법률이

통과되었다. 인도는 면화를 영국으로 보내야만 했고, 영국에서 생산된 의복을 사

입어야 했다. 그 결과, 말할 것도 없이, 토착산업이 성장할 수 없었다. 인도의 다른

천연자원과 환금작물에도 유사한 규제입법이 적용되었다.

또한 비판이론은 영국법의 “실패”—영국인 관리들이 공공연히 한탄했던, 소송의

홍수와 법절차의 무원칙한 조작—가 사실은 엄청난 인구의 원주민을 통제하기 위한

성공적 전략이었다고 주장한다. 소유권을 분명히 한 것, 식민당국의 운영을 위한

세금을 부과한 것, 특히 “고대의 관습”을 법원이 지지한 것 등의 정책은 저항을

분산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이런 전략은, 제국 건설을 위하여 사회관계를 전면

적으로 재편하고 있던 영국 식민체제에 대한 인도인들의 공격을 딴 곳으로 돌리게

만들었다. 수백만의 사람들이 법적 무기를 동원하여 서로를 공격하기 시작했고,

영국은 원주민들의 이러한 분열상 위에서 번영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인도에서 법은

갈등을 만들어냈다. 토착 관습을 그대로 실행하고자 한다는 주장을 포함하여 영국이

인도에 도입한 방법은, 인도인들을 비도덕적으로 만들었고, 내분에 휩싸이게 했으며,

영국인(또는 영국에서 훈련받은 인도인) 판사와 행정가에 의한 관습의 왜곡에도

저항할 수 없게 만들었다.

요컨대, 비판이론에 의하면, 인도의 영국법은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인도인이

“영국법을왜곡”하고 있다는행정관리들의한탄도제국의기능에대한통치자로서의

만족감을 위장하는 악어의 눈물이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분열시켜 다스린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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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은 미국 정부가 인디언에 대하여 사용했던 그것과—인도에서의 규모가 훨씬 큰

것이긴 하지만—같은 종류의 것이다.

5.2 일본적 “조화”와 엘리트 지배

제3장에서미나마타의수은중독사례를살펴보았는데, 공식적인법이일본적관습에

반하기 때문에 일본법이 “저발전”되었다는 주장이 여기서 나올 수 있었다. 제4장에

서는 이러한 관습이론에 대한 구조주의적 비판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비판이론은

미나마타 사례에 대한 이들 두 접근법을 모두 비판한다. 관습이론이나 구조이론에

비해서 비판이론은 미나마타의 화학공장이 지배적 권력을 가진다는 사실에 훨씬 더

비중을 둔다. 미나마타의 경우 희생자의 경제적 운명은 회사에 의해 좌우되었으나,

니가타의 희생자들은 오염원 공장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는 자립 수단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미나마타 희생자들의 의존성은 구조주의가 설명하는 권력중립적인 복합관계망

이상의 그 무엇이다. 복합관계는 상대방의 복종을 강요하는 상대적인 권력 차이를

설명하지 못한다. 미나마타의 화학공장은 속임수, 협박, 조직폭력을 동원하여, 사람

들이 이미 느끼고 있던 생계와 복지에 대한 공포를 더욱 심화시켰다. 회사 폐기물과

이상한 질병간의 연관성을 처음 발견했던 회사측 의사는 침묵을 강요당했다. 그의

연구자료는 은폐되었고, 그는 다른 직종으로 전근되었다. 그가 이 문제를 계속해서

공론화하려 하자, 회사는 그를 해고했고 중상모략했다.[25, 122–125쪽] 회사가

주민들에게 경고하고 생산방법을 바꾸는 등 공식적 조치를 취하기 몇년 전부터 이미

회사는 수은 폐기물과 질병간의 관련성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여론의 비난이 일기 시작하고 희생자들에게 유리한 증거들이 속속 발견되자,

회사는 전술을 바꾸었다. 다액의 보상금을 지급하도록 회사를 “강제하면” 병원과

학교가 폐쇄될 것이라는 풍문이 급속히 퍼졌다. 회사가 직장인 사람들은 희생자들을

불가촉천민인 것처럼 두려워하고 회피했다. 희생자들을 공공연히 동정하면 해고될

것이라는 회사의 통보가 있었기 때문이다. 시위에 나선 희생자들은 협상을 위해서

회사 건물로 초청되었으나, “경비원들”과 회사경영진이 조직한 노조 구성원들에

의하여 잔혹하게 공격당했다.[25, 94–95쪽] (이 사건을 취재하던 미국인 사진기자도

공격을 받아 머리를 심하게 다쳤다. 그는 시력을 영구상실했고 끊임없는 두부 고통을

호소하다가 짧은 인생을 마감했다.)

따라서 미나마타 주민들이 일본적 “관습”에 순응한 것은 그들의 무력한 지위에

기한 합리적인 반응이었다는 것이 비판이론의 설명이다. 순응은 합의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공포와 굴복을 의미한다.

일본법의 저발전에 관한 비판적 관점의 이론을 여기서 상세히 서술할 여유는

없지만, 한가지만은 꼭 언급을 해야 할 것이 있다. 일본법의 외견상의 “저발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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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 이후의 현상이라는 것이다. 전전에는 소송제기율도 높았고 법전문가도 무척

많았다.[14, 140–145쪽] 일본법의 극적인 쇠퇴는 1920년대와 1930년대에 벌어진,

대립적인 소송대신 조정을 이용하도록 강제한 운동의 결과라는 것이다. 혹자에

따르면[14], 서구의 자유주의적 인권에 반대하고 신유학적 집단가치를 옹호하는

정부관료에 의하여 일본법의 여러 분야에 걸쳐 강제적 조정이 강요되었다. 조정을

도입하고 처음 얼마간은 법적 청구를 제기하는 사람 수가 오히려 늘어났다. 조정이

또하나의 길을 열어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몇몇 이유로 인하여 전쟁의 발발과

더불어 모든 종류의 법적 청구가 위축되었고 다시는 예전의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다.

5.3 소비에트법에 대한 무슬림의 반응

이제중앙아시아의소비에트법에대해알아보자. 제3장에서는이사례를외래의법에

대한 관습의 승리로 설명하였다. 군사력과 경찰력의 동원에도 불구하고 볼셰비키는

무슬림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실패했던 것이다.

정말 그런가? 하고 비판이론은 물을 것이다. 다음과 같이 달리 설명할 수도

있다. 볼셰비키는 무슬림사회를 파괴하는데 성공했다. 수천명의 여자들이 새롭게

부여된 기회를 찾아 가정을 떠났다. 소비에트법의 제정과 집행으로 인하여 곳곳에서

갈등이 야기되었다. 그런데 조화와 균형이 아니라 갈등이야말로 볼셰비키가 노리던

것이었다. 그들이 실패했다면, 그 실패는 이러한 갈등을 근대적 경제행위로 돌리지

못했다는 데 있다. 마셀은 이런 점에서 그들이 실패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

실패는 경제적 자원이 부족해서이지, 무슬림 관습에 비해서 법이 취약했기 때문이

아니다. 볼셰비키는 법을 바꿀 수 있는 정치적 권력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경제

성장에 관한 한, 지방주민들은 볼셰비키에 의존하고 있지 않았다. 따라서 소비에트는

이런 종류의 권력(경제적 권력)의 핵심요소를 통제할 수 없었다. 비판이론에 따르면,

법을권력의무기로사용하기위해서법제정자가가져야하는것이바로이런것이다.

5.4 분업에 따른 갈등

비판이론의 공격을 받는 것은 뒤르켐의 구조주의도 예외가 아니다. 몇몇 구조주

의자들조차[23, 10] 원시사회가 억압적이라는 뒤르켐의 묘사가 근래의 인류학적

증거들과 맞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원시사회는 거의 전적으로 조정과 같은 복구적

사회통제를사용하고, 현대사회가감옥, 경찰, 정보국같은억압적제도를사용한다는

것이다. 뒤르켐은 그와 일반적 관점을 공유하고 있는 구조주의자들에 의하여 이미

한 방 먹은 것이다.

그러나 비판이론가들은 뒤르켐이 전문화와 불평등이 함께 일어난다는 명백한

증거를 무시했다고 비판함으로써 최후의 일격을 가했다고 생각한다. 직업이 분화

되어 전문화한다는 것이 이야기의 끝은 아니다. 행정가가 이 모든 전문적 작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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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조정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전문화와 함께 계급의 분화가 증대된다. 전문화의

효율성에 의하여 생산된 잉여의 부를 통제함으로써 일부 집단이 다른 집단에 대하여

지배를 확립하는 것이다. 전문화는 생산과정을 통제하는 자에게 경쟁에서의 우위를

보장한다. 따라서 전문화는 불평등을 증대시킨다. 법을 이용함으로써 지배계급은

잉여의 부를 갖지 못한 자들을 계속 착취하고자 한다. 지배계급은 사회의 생산과정을

통제하고 있으므로, 전문화가 그들의 부와 권력을 증대하는 데 유리하다면 전문화의

양을 증대시킨다.[4]

5.5 이스라엘 자치체들의 법

비판이론은 제4장에서 제시된 구조주의자들의 가정, 즉 조직의 특정한 형태는

반드시 법의 형식성을 가져온다는 가정을 거부한다. 이스라엘 자치체 사례에 대하여

비판이론은 다음 두 가지 접근법을 취할 것이다. 하나는 자치체 수준에서 증거를

다루는 방식이다. 모샤브가 법의 형식화를 이루었다면, 그것은 내부의 특정 분파

(자치체에 사소유권을 도입하는데 성공한 바로 그 분파)가 사법위원회의 설치와

규칙의 성문화에서 어떤 이익을 발견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익이란 개별 가족

간의 성공의 차이에 따른 부의 차이를 말하는 것이다. 비판이론가는 사법위원회가

집행하는 규칙을 조사하여, 부유하고 권세있는 가족을 덜 성공한 가족의 좌절이나

반란행위로부터 보호하는 증거를 거기서 발견하고자 할 것이다.

보다 넓은 관점의 또다른 비판이론적 해석도 있을 수 있다. 모샤브와 키부츠

의 차이는 사소한 것이며, 더 큰 사회로 일반화할 수 있는 어떤 경향도 보여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두 자치체 모두 규모가 작고 법이 아니라 주로 관습에 의하여

지배되었다. 모샤브의 사법위원회는 관습을 거의 떠나지 않았고 여론에 의하여

통제되었다. 법은 작은 공동체에서의 몇몇 규칙의 공식화보다 훨씬 복잡한 과정이다.

법은 민족국가와 더불어 발전했고, 자본주의의 역사상 특유한 발전의 일부분이다.

모샤브의 사법위원회를 세계의 여러 사소유권 기반 사회체계의 특징인 법발달과

동일시하는것은사회적불평등을정당화하는것에불과하다.[22, 4쪽] 모샤브에서의

법에 대한 필요를 복잡한 민족국가에서의 법에 대한 필요와 등치시키기 때문이다.

복잡한 사회의 법은 계급지배에 기여하는데, 구조주의적 관점은 계급지배를 필요한

것이라고 부름으로써 그것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갈등이론은 특정 법형태를 불가피하게 하는 내재적이고 보이지 않는 사회조직상

의 특징이 있다는 구조주의적 주장을 거부한다. 대신 법이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듯이, 엘리트의 특권을 조장하고 보호하는 그들의 의식적 결정의 산물이라는 것이

다. 관습을 “부적절하게” 만드는 어떤 사태도 일어나지 않는다. 관습이 부적절하게

된다면 그것은 오로지, 강력한 엘리트(예: 파이어스톤 타이어 회사, 알코아 알미늄

회사)가 “후진” 사회(라이베리아, 자메이카)를 통제하기 위하여 자원을 착취하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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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때, 원주민의 관습이 집단 성원들로 하여금 강력한 외부인의 권력에 저항하도록

하는데 부적절하다는 의미에서이다.

6 결론

갈등이론이 관습이론, 구조이론과 일치하는 바가 하나 있다. 법이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 인간사회의 불가피한 부분이 아니라는 점, 인간의 근원적인 공격성을

통제하기위한필요에서나온것이아니라는점이다. 다른두이론과마찬가지로비판

이론도 법을 사회적 산물로 본다. 그것은 특수한 역사적 사건으로 인하여 생겨났다.

우리가 법을 자연적이라 생각하는 것은, 우리의 시야가 우리의 종속적 지위(이것도

법을 생겨나게 한 바로 그 사건의 산물이다)에 의하여 제한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밖의 다른 모든 점에서 갈등이론은 다른 두 이론을 비판한다. 너무 순

진하거나 지배계급의 이익을 위하여 사람들을 억압하고 갈등을 이용하는 사회체계 ·

법체계와 공모하고 있다는 것이다. 법발전의 역사는 특권계급의 손에 권력과 통제력

을 쥐어주기 위한 때로는 사납고 때로는 차분한 추진력의 역사이다. 법제정자가 작은

집단의 관습의 힘을 꺾는 데 곤란을 겪는다면, 그것은 오로지 지배계급이 관습적

지도자들의 독자적 권위를 억누르는 데 경제적 힘을 효과적으로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관습이 관습적 집단 내의 행위를 통제하기에 “부적절하게” 되는 경우란

없다. 관습은 관습적 집단이 지배계급의 “상부 권위”에 굴복할 때 법에 의하여

내쫓기는 것이다. 지배계급은 많은 관습적 집단들을 지배함으로써 권력을 얻는다.

법의 기원에 관한 여러 장들에서 우리는 세가지 대립되는 관점을 살펴보았다.

다음 장부터는 사회과학자들이 연구해 온 특정한 주제들을 다룰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 본 세가지 관점이 앞으로도 적용될 것이다. 때로 한 입장의 주창자가

어떤 질문을 제기하면 다른 입장의 주창자가 그것을 재해석할 것이다. 법은 어디에서

오는가라는 문제에 답하는 것은 물론 중대한 과제이다. 하지만 이 문제와 부분적으

로만 관련된 다른 많은 문제들도 사회과학자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어왔다.

이하의 장들을 공부할 때도 지금까지의 세가지 관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들 세가지 관점에서 특정 주제를 접근해야 한다. 이론은 때로 지루하고 너무

추상적이고 비현실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론이 없이는 사실과 관찰, 일시적

의견과 사이비이론의 바다에 빠지고 만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은 처음 시작할 때처럼

무지하고, 혼란스럽고, 좌절하게 될 것이다. 이론의 가치를 이해하면, 지금까지의

세가지 이론을 모두 거부하고 법에 관한 논의의 모든 “혼란”을 더 잘 설명해주는

새로운 이론을 개발하는 보다 바람직한 입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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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법의 기원: 생각해 보기

고대 그리스 문명은 자기만의 문제를 가졌지만, 그 이후의 모든 세대는 그리스의

풍부한 관념과 실천을 탐구하는 것이 유용하고 영감을 주는 것이라 생각해왔다.

그리스 문명의 주요 특징 중의 하나로 민주주의와 법의 발전을 꼽을 수 있다. 도서관

에는 그리스 사람들이 이루었던 철학, 예술, 문학, 정치관행의 독특함에 대한 해설로

가득차 있다.

법의 기원에 관한 세가지 관점을 살펴보았으므로 이제 이것을 고대 그리스의

사회변화를 해석하는 데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법의 기원에 관한 세가지

관점으로 페리클레스 시대 아테네의 민주주의와 법의 발전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자.

E. R. 돗즈[9]는 민주주의와 법의 발전을 낳았을 뿐만 아니라 결국 그것들의

몰락을 가져왔던 고대 그리스의 일련의 격변을 묘사하고 있다. 그는 사람들이 규칙 ·

가치 ·규범에 대한 위반에 어떻게 반응했는가에 따라 그리스 역사(기원전 330년로마의 성장과 함께 몰락하기까지의 역사)를 세 개의 시대로 구분한다. 제1기,

즉 “호메로스” 시대(기원전 850년까지)는 “체면”문화였으나, 나머지 두 시대는

“범죄”문화였다(체면과 범죄의 구분은 돗즈가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 [3]에서

빌어온 것이다).

호메로스시대의사람들은가부장적가족과공동체단위속에서살았다. 가부장의

말은 곧 “법”이었다. 그는 모든 가족 구성원들 위에 군림하는 궁극적 권위자였다.

개성은 가족과 공동체의 필요에 굴복했다. 이러한 보편적 집단주의에 대한 유일한

예외는 가부장들에게 영웅적 전사가 될 것을 요청한다는 것이다. 개인적 기술과

용기의 이러한 제한적 표출을 제외하면, 모든 사람이 지방적 ·집단적 의무 연관에

속박되어 있었다.

그 결과, 규칙을 위반하거나 어른들을 모욕하거나 의무를 망각하는 등 예기치

않은 행동을 하는 자는 어떤 초자연적 힘(ate)에 씌어서 적절한 행동을 못하게 된

것이라 간주되었다. 위반자들은 어떤 초자연적인 힘 때문에 잠시 정도에서 벗어난

행동을 했다고 말할 수(그리고 믿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처벌을 면하는 것은

아니지만, 다만 체면의 문제일 뿐 범죄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기원전 800년에서 600년 사이(고전 시대)에, 그리스의 체면문화는 선대의

잘못으로 인한 불운과 죄악이 다음 세대로 유전된다는 관념에 사로잡힌 문화로

변화하게 된다. 이제 초자연적인 힘이 아니라 유전된 범죄에 의해서, 근친상간이나

가족간 살인 또는 어른들(특히 가부장들)에 대한 무례를 설명하게 되었다. 이 시기는

엄청난 사회적 혼란으로 점철된 시기이다. 전쟁을 비롯한 사회적 ·경제적 붕괴가

이어졌다. 고전 시대 그리스의 200년은 불황과 전쟁의 시대였다. 그 결과, 가족과

씨족의 유대도 흔들렸다. 가부장의 권위도 이런 불운을 막아낼 수 없었고 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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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츰 쇠퇴하게 되었다. 염세주의가 낙관주의를 밀어냈고, 공포, 시기, 질투 등 절망적

감정들이 유전된 범죄에 대한 믿음을 길러냈다.

그러나 이러한 혼돈 속에서도 기원적 599년부터 323년까지의 아테네는 이성,

민주주의, 법, 철학, 예술, 그리고 특히 희망의 성채를 건설하였다. 아테네가 군사적 ·

상업적 맹주로 떠오르면서 시골출신 사람들이 아테네로 몰려들었다. 번영, 권력,

새로운 관념이 모험가와 야심가들을 자극했다. 이들의 이주는, 전쟁과 계급투쟁이

낳은 문화적 다양성과 더불어, 이전 두 시기의 체면문화와 유전된 범죄문화를

특징지웠던 가족적 유대를 해체시켰다. 사람들은 과거의 전통과 시골의 타부에

어긋나는 결정과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아테네 사람들은 이제 새로운 이성적 철학이

제시하는 기준 이외에는 행동의 기준을 찾을 수가 없었다. 새로운 철학은 고대적

전통, 종교적 미신, 가족적 의무와 단절할 것을 요구했다. 그 대신 이성에 따를 것을

요구하였다. 이성은 철학자들이 옹호하는 합리적 학문에 부합하는 새로운 법률의

형식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변화는 새로운 유형의 범죄문화를 낳았다. 그것은 그리스 철학, 법률,

정치에 등장한 개인주의에 터잡은 것이었다. 고전 시대와 마찬가지로 아테네인들은

전통적 규칙, 특히 가부장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해야 한다는 규칙을 위반했다. 하지만

이전 시대와는 달리, 유전된 범죄관념은 사라졌다. 그 대신 철저하게 개인주의적인

내면화된 죄의식이 생겨났다. 조상을 탓하는 대신, 아테네인들은 자신들의 행동에

기인한 재난에 대해서는 자기자신만을 탓했다. 새로운 철학은 가족과 씨족에 대한

전통적 충성을 “비합리적”인 것이라고 가르쳤다. 전통적 충성이 사라짐에 따라,

자기 행위에 대해서는 자기가 책임져야 한다는 “합리적” 설명만이 남게 되었다.

돗즈의 결론은 전통적 충성이 사라짐에 따라 아테네인들은 법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는것이다. 더욱이그법은, 합리적조직을가진민주적국가의합리적시민상에

부합하는 합리적인 법이 되어야 했다. 이성, 또는 오성이 번영과 선한 삶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그들은 생각했다. 성공과 마찬가지로 실패도 그들 자신의 탓이지, 저 멀리

떨어진 올림피아 신들의 탓이 아니게 된 것이다. 종교가 아니라 교육과 자기연마가

핵심적인 것으로 되었다. 모든 사람이 자기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하므로, 모든 사람이

정치에 참여해야 했다. 그것도 개인의 자격으로서…

그러나 아테네는 이성의 꿈을 완전히 실현하지는 못했다. 역병의 창궐, 내부적

불화, 전쟁과죽음으로인하여이성의힘에대한사람들이신념은끊임없이흔들렸다.

어떤 이들은 전통적이고 비이성적인 옛 생활방식이 더 낫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가부장적 지배에 반기를 드는 거만한 행동이 신과 정령들의 노여움을 불러왔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따라서 비이성과 이성간의 투쟁이 이어졌다. 이성의 목소리의

대변자(예: 소크라테스)들 중 다수는 자신의 가르침을 철회해야 했거나 아테네에서

추방되거나 고통 속에서 죽어가야 했다. 정치적 민주주의와 법의 지배를 구현하는

위대한 공화국은 깨어진 기억의 단편이 되었다. 이것을 수리하고 재창조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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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은 국가론에서 그의 이상적인 꿈을 제시했던 것이다.

이상이 고대 그리스 역사에 대한 돗즈의 서술이다. 그것은 사회적 ·법적 변화에

대한 설명이다. 그것은 수세기에 걸쳐 어떻게 그리고 왜 법이 발달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가설이다. 이 설명이 적합한 것인가를 평가하기 위해서 우리는 지금까지 살펴본

자료들을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이 사례를 제3장에서 고찰한 관습으로부터 법이 발달한다는 명제에

부합하게할 수 있는가? 그것은 관습이론에 들어맞는가, 아니면제4장의사회구조적

설명에 더 부합하는가?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한 충분한 정보를 돗즈의 설명에서 찾을 수 있는가?

돗즈의 설명은 법발전에 관한 대립되는 설명방식인 사회구조와 계급갈등간의

구분을 가능하게 하는가? 이를테면, 가족적 관습으로부터 아테네의 법률로의 이행을

계급대립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또는 설명할 수 없다는) 주장을 할 만한 그리스의

계급관계에 대한 서술을 돗즈에게서 찾을 수 있는가? 세가지 관점 중의 하나에

딱 들어맞는 주장을 펼치기 위해서는 어떤 추가적인 정보를 더 찾아야 하는가?

비판이론가라면 돗즈의 체면문화/범죄분화 이분법을 어떻게 평가할까? 돗즈의

이분법은 멕시코의 두 마을간의 차이에 관한 네이더의 분석(제4장)과 어떻게

부합하는가? 세가지 이론 중 하나를 선택하기 위해서는 아테네 사회가 자유로운

유권자 시민과 아무 정치적 권리도 없는 노예로 나뉘어져 있었다는 사실을 추가로

고려해야 하지 않는가? 그렇게 한다면 당신의 평가는 어떻게 달라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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